검색결과 리스트
전체 글에 해당되는 글 59건
- 2021.03.06 대한민국 육군내 스파이
글
대한민국 육군내 스파이
여순반란 사건
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 제14 연대의 군사 반란 사건을 지금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부(아니 주류 쓰레기 먹물들) 세력들이 "여순항쟁"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정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대한민국 최초의 군사 쿠데타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여수, 순천 해방구를 만들려 했던 여순 군사반란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자 한다.
1945년 8월 일본 천황의 항복으로 광복을 맞은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자들이 대부분의 지식인을 차지하고 있었다. 38도선 이북의 소련 고문단들은 "김일성"을 소련 공산주의 전파 세력의 꼭두각시로 지정하여 일사 분란한 자본주의, 민족주의자들을 처형하고, "농민들에게 농토를 돌려준다."는 선전문구 아래 지주에게서 전국의 토지를 무상 몰수하고 이를 허울 좋은 공동 경작, 공동 수확이라는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북조선을 공산주의 체계로 전환하였다. 38선 이북을 평정한 김일성의 공산주의자들은 대한민국의 적화 통일을 위하여 "통일전선 전략"을 소련 고문단의 지도 아래 진행하였는데 남한 내 지도 계층 속에 공산주의자들을 침투시키는 작전을 구사한다. 그중 가장 역점을 둔 분야가 군사 조직 내 공산주의자들을 침투시키는 것이었다. 미군정 하에서 38선 이북의 공산주의자들의 도발을 방어하기 위해 미 군정은 "국경 경비대"라는 이름의 군대 조직을 만들고 국경 경비대의 장교들을 양성하기 위해 군사 영어 학교를 설립하자 김일성 일당들은 평양에 설립한 강동 정치 학원에서 훈련된 스파이들을 군사 영어 학교에 입학시켜 국군 장교로 임관하는 공작을 벌이게 된다. 그 대표적 인물이 군사 영어 학교 3기 졸업생 김 지회와 홍 순석이다.
김 지회는 중위로 1948년 10월 제주도 4.3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여수에 주둔해 있던 육군 제14 연대 대전차포 중대장이었고, 홍 순석 중위는 순천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 14 연대 후방 2개 중대를 지휘하던 선임 중대장이었다. 이들과 함께 14 연대 주임상사인 지창수와 여러 명의 하사관 스파이들이 주동이 되어 1948년 10월 19일 대한민국 최초의 군사 반란을 일으킨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육군 제 14 연대는 제주도에서 발생한 4.3 제주 폭동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항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 대기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남로당의 폭동을 진압하는 것을 반대하라는 명령을 받은 지 창수 상사와 하사관들이 먼저 반란을 선도하였다. 김 지회 중위가 중심이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미 군사 고문단의 기록을 중심으로 서술하면 10월 19일 저녁 10시 10분경 지 창수 상사를 중심으로 한 공산 쿠데타 세력은 비상 나팔을 불어 출항 준비 중이던 2,700여 명의 병력을 연병장에 집합시켰다.
지 창수 상사는 집합한 병사들 앞 연단에 올라, "친애하는 병사 여러분! 우리는 동족 살상의 제주도 출동을 결사반대한다."며 일장 연설을 하였고, 선전 선동 조들의 "미제와 이승만 매국 도당을 타도하자!"라며 부대원 안에서 바람을 잡았다. 이런 불법적인 명령 불복종을 제지하던 1명의 장교와 3명의 하사관을 장교 처단조 조장 심 재호 상사 일행의 발포로 사살하고 무기고 점령 조가 무기고의 탄약과 무기를 지급하자 14 연대 2,700여 명의 병력은 여수시 경찰서를 점령하러 여수 시내 쪽으로 진출하게 된다. 이날 지 창수 상사의 반란 세력들은 제1 대대장 김일영 대위, 2대대장 김순철 대위, 3대 대장 이봉규 대위 등 대대장 전원과 연대 작전주임 장교 강성윤, 정보주임 장교 김래수 중위, 진도연, 김녹영, 맹택호, 박경술, 민병여, 김진역, 이상술, 장세종, 이병순, 노영우, 이상기 소위 등 20여 명의 장교를 처단하였다. 반란 하사관들에 의한 14 연대 주요 지휘 장교들이 사살된 것이다.
반란군들의 여수 경찰서 공격 정보를 접한 여수 경찰서장, 고 인수 서장은 150여명의 경찰 병력과 40여 명의 헌병 병력을 동원하여 적들을 저지하려 하였으나, 병력 차가 너무 나고, 무기와 탄약의 부족으로 결국 여수 경찰서를 반란군에게 넘겨주고 후퇴하였다.
반란군은 여수 경찰서와 시청 등 주요 관공서를 점령하자 1948년 4월 20일 위원장 이용기, 보안서장
유목윤 등을 중심으로 여수 인민 위원회를 만든다. 이들은 여수 시내에 북조선 인공기를 게양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헌법을 인정하지 않는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대한 수호와 충성을 맹세한다 등의 6개 항의 여수 인민위원회 결정 사항을 공포한다. 오후 1시에는 중앙동에서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인민재판"을 진행하여, 이 자리에서 경찰관 가족과 지주, 기독교 계열의 지역 유지들 500~1,200명이 사살된다. 또한 한국은행 여수 지부를 장악한 반란군은 지역민들에게 무상 대출이라는 명목으로 자금을 살포하였으며, 모여든 여수 시민들에게 고무신과 기타 생활용품 등을 무상 배포하였다. 이를 지급받아 착용했던 사람들은 이후 진압군들에게 빨갱이 동조자로 지목되어 이후 2,000여 명이 학살(massacre) 되기도 하였다. (세상에 공짜가 없습니다, 괜히 고무신 공짜로 받아 신었다가 사살됩니다.)
여수를 장악한 반란군에게 남로당 지리산 유격 전구 사령관 이 현상(강동 정치학원 출신) 사령관의
"봉기군은 지리산으로 입산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자, 2개 중대 병력만 여수 치안 유지를 위해 남기고 나머지 병력들은 기차와 화물 트럭으로 지리산으로 향하기 위해 순천으로 이동하였고, 순천에 주둔 중이던 홍 순석 중위 휘하의 2개 중대 병력을 흡수하여 순천을 점령한다. 4월 21일 주력 부대는 남로당의 명령대로 지리산 유격대에 합류하기 위해 지리산으로 입산하였지만 200여 명의 반란군은 광주로 진군하기 위해 벌교, 보성, 고흥, 화순 방면으로 이동하여 경찰 가족과 지주에 대한 잔인한 살육을 진행하였다. (당시 반란군들 중 상당수는 어쩌다 반란에 가담한 자들이 많아 군기가 엉망이었다. 명령 체계도 없는 당나라 군대 그 자체였음)
이 승만 대통령은 1948년 10월 21일 반란군 점령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약 1개 사단 병력의 "반란군 토벌 전투 사령부"를 창설하여 벌교, 보성 지역 진출 부대와 여수 시내 잔존 병력을 진압하고 이후 약 1년 6개월간의 지리산 반란군들을 토벌한다. 이 과정에서 마산에 주둔했던 제15 연대 연대장 최 남근 중령은 가짜 포로 행세를 하며 이 현상과 접촉하여 지리산 부대에 합류하려 했으나 남로당의 군내 조직 유지 명령을 받고 탈출하는 형태로 15 연대로 귀환하였으나 이후 김 창룡의 방첩부대에 체포되고 남로당 조직원인 것이 탄로 나 총살된다. 여, 순 반란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인 군부 내 공산조직 색출 작업이 진행되어 약 5퍼센트의 장교들이 남로당 조직원인 것이 발각되어 대부분 사형된다. 이때 박정희 소령도 남로당 군부 조직의 주요 멤버로서 사형을 당할 입장이었는데 백 선엽 장군의 구명 활동에 힘입어 사형을 면하였다.
이 현상과 지리산에 입산한 반란군들은 토벌대의 끈질긴 추적으로 모두 사망하였는데, 지금도 왜 남로당은 어렵게 만든 군내 조직을 이렇게 허무하게 없앴는지 알 수 없다. 만일 이 조직이 1950년 6.25 전쟁까지 남아 낙동강 전선의 후방에서 봉기하였다면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존재했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설 익은 남조선 봉기론을 맹신한 남로당 전남도당의 명령을 받은 지 창수와 하사관들의 반란이었다는 설이 많다.
반란 봉기 이후 지리산에서 "지리산 유격 전구" 이 현상 사령관은 "이번 봉기는 남로당의 전력을 노출시킨 잘못된 봉기이다."라고 지 창수 상사를 비판하였다는 내용을 볼 때 우발적 반란이라 생각된다.
이런 모든 과정을 볼 때 "여. 순 군사 반란"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김일성 괴뢰 정권의 하수인들이 저질은 동족 살상 군부 반란 사건이지 항쟁은 아니다.
영어단어 공부합시다.
1. rebellion
"반란, 모반, 반항"이라는 의미의 단어이다. 이 단어의 어원은 "re" 또다시 + "bellona" 전쟁의 여신에서 왔지만 단어를 외우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하여, 60년대 유명한 영화 "rebel without a cause"(이유 없는 반항)을 기억하면 "반항, 반란"의 의미를 외우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2. Head Quarter
"본부, 사령부"라는 의미이다. "head"는 대장, 우두머리, "quarter"는 지역, 섹션의 의미가 있어 대장이 머무르는 지역, 본부라는 의미이다
3. massacre
"대량 학살"을 의미한다. "mas"는 대중, 다량 + "scare"는 베다, 제거하다의 의미가 있어 대량 제거라는 의미로 유추 가능.
'영어공부 , Vocabul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공모함 전성시대 2. (0) | 2021.09.22 |
---|---|
해전의 역사를 바꾼 항공모함 1. (0) | 2021.09.18 |
6.25 전쟁의 장군들 (0) | 2021.02.13 |
6.25 전쟁 과 휴전회담 (1) | 2021.02.05 |
6.25 전쟁 주력무기 (0) | 2021.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