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최대탱크전에 해당되는 글 1건
- 2020.11.07 히틀러의 마지막 승부
글
히틀러의 마지막 승부
쿠르스크 전투(The battle of Kursk)
1943년, 스탈린그라드에서 참패를 당한 히틀러의 독일군은 이후 전 동부전선에 걸쳐 상당한 후퇴를 한 상황에서, 전쟁의 분수령이 되는 전환점을 찾느라 분주하였다.
독일 남부군 사령관, 만슈타인 원수는 이른 봄, 히틀러에게 동부전선의 전환점을 쿠르스크(the city of Kursk)에서 찾아야 된다고 보고한다. 쿠르스크는 소련 중부 전선에서 독일 전선 쪽으로 돌출된 부분(salient)의 중심 도시로서, 중부군과 남부군의 협공하기 가장 좋은 지점이었다. 이곳을 점령하고, 소련 정예군을 격파한다면, 모스크바로 진격할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보고한다.
히틀러 역시 새로운 전기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시점에, 이 공격 계획에 대하여 면밀히 검토하기 시작한다. 역사에 가정이 없지만, 만일 히틀러가 원래 계획처럼 5월 3일에 전격적으로 실시했다면, 쿠르스크를 점령하고, 대승을 거두었을 것이다. 히틀러는 낫질 작전을 실시할 때, 자신이 말한 도박사(gambler)의 정신은 남아있지 않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처럼 완전한 승리를 위하여, 방어가 잘된 좁은 지역에 많은 병력을 투입하는 과오를 범한다. 히틀러는 더 이상 독일군이 가진 적의 허를 번개처럼 치고 들어가, 적이 손 쓸 기회조차 주지 않는 전격전(Blitzkrieg)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다.
히틀러는 좀 더 많은 타이거 탱크와 공군기를 확보해야 된다는 명분으로 작전을 2달이나 연기한다. 소련도 이미 첩보 채널을 통하여 독일이 1943년 여름 공세를 쿠르스크 쪽으로 취할 것을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한다.
소련군 사령관 쥬코프는 대탱크용 참호, 대전차 지뢰와 철책선으로 3중 방어선을 형성하였다. 방어선을 얼마나 많이 설치하였는지 남쪽, 북쪽 방어선을 일직선으로 연결하면 모스크바에서 마드리드까지 2번 왕복할 약 10,000 km의 길이였다.
쿠르스크 전투에 히틀러는 독일이 가진 모든 인적, 물적 장비를 다 투입한다.
약 78만의 병력, 최신형 전차-팬저 5형 판터 , 6형 전차 티거와 대전차 자주포 페르디난트 등 2천여 대의 탱크와 독일 최정예 기갑사단(Armored Division)인 SS사단을 최 선봉에 투입한다.
수투카에 37mm 기관포 2문을 장착한 최신형 급강하 폭격기 및 기동성을 강화한 지상공격기 FW-190 포커 울프를 포함한 2,200여 대의 Luftwaffe 등도 이 전투에 투입한다.
히틀러는 모든 생산력을 쥐어짠 전투 준비를 마치고, 1943년 7월 5일 독일의 마지막 공격 작전(operation citadel)을 시작한다. 독일 육군과 공군의 전력은 2년 전 소련 침공 작전(operation barbarossa) 때보다 병력 수는 적지만, 화력과 기동력은 오히려 월등한 상태여서 히틀러는 반드시 이기는 작전이라고 생각했지만, 소련의 전력은 이미 독일을 능가하고 있다는 현실을 히틀러만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소련은 쿠르스크 수비대 병력 130여만 명, 탱크 3,500 대, P-39 에어 코브라, IL-2기 등 3,300여 대를 준비하고 있었고, 추가적으로 예비대 60만 명과 탱크 1,000대가 후방 전선에 배치(deploy)되어 있었다. 히틀러는 소련의 무지막지한 병력(endless manpower)을 너무 우습게 생각했다. 이들은 예전의 훈련이 안되고, 구형(obsolete) 탱크로 독일의 전격전을 막아 내던 그들이 아니었다.
또한, 소련 첩보국(NKVD: KGB전신)은 독일 총참모부 내의 스파이, "베르테르"로부터 독일군 공격 날짜, 위치 등 자세한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다. 모든 작전 내용이 적에게 알려져 있고, 요새화 된(fortified) 쿠르스크 돌출부를 공격하는 것은 이미 이길 수 없는 전투를 하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한(ironic) 에피소드는 쿠르스크 전투를 시작한 것은 독일군이 아니라 소련군이 시작한다. Operation Citadel 시작 한 시간 전, 쥬코프의 명령에 따라, 일제 포격(all-out bombardment)을 독일군 지역에 퍼부었다. 예견된 것처럼, 북부와 남부에서의 독일군 진격은 3중 방어선에 묶이고, 소련군의 조직적인 저항에 부딪쳐 더디게 진행되었다. 북부에서의 진격은 5일 동안 고작 19 km 진격이 전부였다. 남쪽에서의 진격은 조금 나아서 3일 만에 30km 전진을 하며, 500여 대의 전차를 격파하였지만, 쿠르스크 남동쪽 저지선이 너무 완강하고 (이곳의 대전차 참호는 폭이 7m, 깊이가 2m에 이르는 큰 강과 같았다), 대전차 매복이 심해서 정면 돌파가 힘든 상황에 빠진다. 남부군 기갑사단은 우회 공격을 위하여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조그만 도시, '프로호르프카"로 향한다. 7월 10일 프로호르프카의 동쪽에서는 스탈린의 특명을 받은 소련 제5 근위 전차군 900여 대의 탱크가 도착하였고 남서쪽에서는 독일 최정예 검은 해골 마크의 제2 SS 기갑사단을 선봉으로 한 탱크 700여 대가 3 제곱 킬로미터의 낮은 구릉 지대에서 조우(encounter) 하게 된다. ※ 쿠르스크 전투의 탱크전 전과는 소련과 연합국(미국 기록)의 내용이 너무 상이하여, 쿠르스크 전투에 이은 오렐, 하르코프 전투까지 포함한 탱크 교환비 1:8.5를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독일 탱크들은 2 km 밖에서 T-34를 관통(penetrate) 격파할 수 있었지만, 소련 T-34는 유효사거리 200m 안에서 측면(flank)으로 사격을 해야 독일 타이거 탱크를 격파할 수 있었다. 소련군은 전 속력으로 독일 탱크에 접근하여 근접 사격을 시도하였고, 독일 탱크들은 회피기동을 하면서 최대한 먼 거리에서 적 탱크를 격파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구릉 지역이 너무 좁고, 소련 탱크들이 너무나 맹렬하게 돌격하여, 소위 "탱크 백병전"이라는 전투가 일어났다. 쿠르스크 전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탱크들이 좁은 지역에서 벌인 전투로 그 참상은 끔찍했다. 3일에 걸쳐 이 전투가 일어났는데 소련군은 추가 지원 부대의 전차까지 합쳐서 1,300여 대의 전차가 격파되었고, 독일군 전차도 350여 대 격파되었다. 소련 제5 근위 전차 군단은 쿠르스크 전투 후, 남부군 추격 작전을 진행할 때 "병력의 반이 사상자이고, 가동 가능한 탱크는 50대뿐이다"라고 쥬코프 장군에게 보고 할 정도로 전차군단이 거의 작전 불능 상태에 빠졌다.
독일 남부군도 단일 전장에서 전체 탱크의 1/4을 잃은 것은 치명적이었다. 소련군의 전차는 또다시 보강되어 2,000여대로 증강되고, 이탈리아에 연합군이 상륙 소식에 히틀러는 제2 SS 기갑사단의 이탈리아 재배치 명령을 내리자, 남부군은 더 이상 쿠르스크로 진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철수하게 된다. 보통은 여기서 쿠르스크 전투가 종결된다고 생각하지만, 후퇴하는 독일군을 쥬코프는 다시 100만 명 이상의 초원 예비 전선 군과 북부지역 전선 군을 동원하여 오렐과 하르코프를 점령하는 작전을 8월 23일까지 펼치는 것 까지를 포함 하여 "쿠르스크 전투"라 부른다. 이 전투에서 실패한 독일은 패망의 길로 접어든다. 독일은 소련이나, 연합군과 맞설 마지막 전력을 여기에서 모두 소진해 버립니다.
영어 공부합시다.
1. citadel
"성채"라는 의미이다. 성채는 원래 성(castle)과 같은 모양이지만, 규모가 작고, 특수 목적용으로 사용되는 전략적 요충의 개념으로 많이 사용된다.
2. fortify
"강화하다, 요새 화하다"의 의미이다. 이 단어의 "fort-"는 요새의 의미가 있다. 접미사 "-fy"는 동사화 접미사이다.
3. ironic
"역설적으로, 반어적인"의 의미이다. 이 단어를 외울 때는 쭈굴쭈굴한 것을 "iron(다리미)"로 밀면, 쭈굴쭈굴의 반대인 편편한, 깔끔한 모습으로 변한다 식으로 연상하면 좋을 듯합니다.
4. penetrate
"관통하다, 통과하다"의 의미이다. "pe(r)-"의 접두사는 꿰둟다, 통과하다는 의미가 있다, 반대 의미 단어는 "impervious"가 있다.
'영어공부 , Vocabul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전백승의 일본(Nippon) (0) | 2020.11.13 |
---|---|
일본제국의 난동(Japanese Empire's rampage) (0) | 2020.11.11 |
스탈린의 무기 (0) | 2020.11.05 |
1942: 언노운 배틀,( Rzhev ) (0) | 2020.11.03 |
히틀러 vs 스탈린 (3) | 2020.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