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선택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1929년 미국의 대공항 사태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본 국가 중 하나였다. 여러 중. 소 은행들이 파산하고 실업률은 하늘을 찌르는(skyrocket) 상항에서 흉작이 계속되어, 정말 쌀밥에 고깃국 먹기가 너무나 힘든 상황이었다. 이때, 우리나라 쌀들을 일본으로 가져가고, 우리나라에는 "대두박"이라는 콩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덩어리를 끼니 대신 지급하던 시절이었다(사실 우리나라 국민이 제일 힘든 시기인 것 같다).

 

일본은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는 방법으로 식민지 확대 정책을 펴 개 되는데, 1932년 만주국을 건설하고, 1937년 중. 일 전쟁을 시작하여 중국 동 남부를 휩쓸게 되자, 미국은 자신들의 아시아 교두보 필리핀이 위협받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1940년 미국은 일본에게 석유 금수조치를 실시하며, 중국으로 부터 철수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당시 일본은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일반 정치인 수상이 아닌, 육군 대장인 도조 히데끼가 내각 수반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이런 금수조치에 대한 대답은 전쟁뿐이었다.

 

1차 세계대전 까지만 해도 일본은 신흥 해양 강대국으로, 미국, 영국과 연합하여 독일에 대항하였지만, 2차 대전의 상황은 일본을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주축국(the axis) 동맹을 맺게 한다.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가장 선결 요건이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격파하거나 제 구실을 못하게 만 드는 것이었다(wrecked or crippled the U.S pacific fleet)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꾸는 미국을 잘 아는 해군 장군으로서 미국과 전쟁을 해야 된다면 초반에 적을 놀라게 할 정도의 강한 타격을 가하여, 미국으로 하여금 협상의 테이블로 나오게 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야마모토 제독

 

1941년 12월 7일, 일본 본토를 떠난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 전단이 미국 태평양 함대의 모항인 하와이 진주만 인근에 도착한다. 이날은 일요일이었는데, 일요일에는 대부분의 미 7함대 주력들은 모항인 진주만에서 주말을 보낸다는 일본 첩보국 보고에 따라 일요일을 D-day로 잡은 것이었다. 전쟁의 시작은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미군 장병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멋진 주말의 아침을 맞고 있었다. 항구에는 전함 8척, 순양함 6척을 포함한 50여 척의 태평양 함대 전력들이 일렬로 정박해 있었다, 일본 연합함대 소속 항공기 (제1차 공격대) 340여 대는 전함 8척을 포함하여 20여 척의 함선을 격침 또는 심각한 피해를 주는 정도로 타격하였고 포드 섬에 있는 육군 항공대를 공격하여 300여 대의 항공기를 격파 또는 심각한 손상(inflicted serious damage)을 입힌다. 1차 공격은 완전한 성공이었다. 공격대는 그 유명한 성공 암호(encoded message)를 타진한다. "토라, 토라, 토라" 또한 공격대 대장, 나구모 중장에게 2차 공격대의 발진을(sortie) 요구하지만, 나구모는 미국 항공모함이 진주만 근해에 있어 역습(counter attack)을 당할 수도 있고, 1차 공격의 효과가 충분하므로 본국으로 회항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2차 공습을 중지시킨다. 

 

불타는 진주만
포드섬 육군 항공대 활주로 폭격

진주만 공습의 후기

일본의 전쟁 시작인 진주만 공습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 군 관계자들 대부분 일본이 전쟁을 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본이 대규모 함대를 6,300 km 떨어진 미국 태평양 함대의 모항인 진주만을 공습(air raid)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부분 필리핀 공격을 전쟁의 시작점으로 생각하였다. 진주만 공습은 너무나 대담한(audacious) 작전으로 일본군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작전이었다. 

시작은 너무나 완벽했지만, 마무리는 최악인 작전이 진주만 공격(assaulted on pearl harbor)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인들의 평가에서 최악의 해군 지휘관으로 평가받는 "나구모 준이치"때문이다. 일본인들의 평가에서 "새가슴" "겁쟁이"로 여겨지는 나구모는 이 작전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너무 없었고, 단지 미 해군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면 미국은 화친 조약을 요구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가진 상태로 이 작전에 임했다. 미국은 막대한 전함 손실을 입었지만 미 해군의 유류 저장소가 안전한 상태였으며, 병기창 역시 폭격을 받지 않아, 2대의 전함을 제외한 나머지는 인양 후, 수리하여 다시 작전에 투입한다.

 

만일 나구모가 2차 공격대를 발진하여 폭격하였다면, 미국은 적어도 1년간은 태평양 함대를 가동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사람, 나구모는 결국 다음 해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 해군의 따끔한 카운터 펀치를 맞고, 4대의 주력 항모를 잃고 만다. 참, 아낄 때 아껴야지, 필요한 시기에는 적절히 사용 못하고, 이미 준비된 적들과의 싸움에서는 매복 공격(ambush)을 당하여 허무하게 주력 항모를 잃어버리는 정말 일본판 원균입니다.

 

일본 장성들의 큰 오판 중 하나가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급습하여 큰 피해를 입히면, 미국은 일본에 화친을 요구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오히려 잠자는 거인을 깨우는(Japan disturbed a sleeping giant) 꼴이 되었다. 미국의 여론은 분노와 결심(fury and determination)으로 들끓어면서 일본과의 전면전 선포를 하게 된다. 트럼프의 Fire and fury는 1941년 문구 "Fury and determination"에서 변형된 문구입니다.

 

미국 해군성 장관 녹스(Knox)의 유명한 문구로 태평양 전쟁의 시작 편을 마무리합니다.

"Jap started this war. We are going to finish it."

영어공부 합시다

 

1. Jap

일본놈

이 단어는 '일본 놈"정도로 해석되는 속어이다. 흔히 일본인들이 "조센 장"이라고 한국인을 비하할 때 써는 말처럼, 영어에서 "Japan", "Japanese"를 사용하지 않고 Jap을 써는 것은 "일본 놈"정도로 비하할 때 사용한다. 이차대전 당시 해군성 장관이면, 이런 단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지만 해군장관은 과감히 "Jap"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일본을 비난했다.

 

2. blockade

봉쇄

"봉쇄(하다)"의 의미이다. 이 단어 암기 시, block은 막다. ade는 도움의 aid와 유사하니 도움을 주려는 외부의 출입을 금하다. 봉쇄하다로 연결하여 외우면 좋을 듯합니다.   

 

3. embark

승선하다

"승선하다, 타다"의 의미이다. 이 단어는 해상운송과 깊은 연계가 있다. 구조가 비슷한 "embargo"는 금수조치하다. 즉 수출을 금하다. 각자 연결 고리를 한번 만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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