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의 짜빈동 전투와 일본군의 operation masterdom

 

대한민국 파월 군인들은 정말 잘 싸웠습니다. 미군들과 베트남 군 등 연합군 병사들도 한국군이 관할하는 지역이 가장 안전하다고 할 만큼 대한민국 군인들은 자신이 맡은 지역 내에서는 베트콩들을 완전히 격퇴하였다. 전투 중 잡힌 북 베트남군 포로에게서 호찌민 작전 명령이 발견되었다. 그 내용은 "한국군과의 교전은 피하라. 완전한 승리가 담보되지 않는 공격은 하지 말고 탐색에 집중하라."였다.

 

1945년부터 시작된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콩 또는 베트 민 게릴라들을 완전히 격퇴할 수 있었던 2번의 기회가 있었다. 이 기회를 만든 주역은 일본 군과 한국 군이었다.

 

1945년 10월 부터 1946년 5월 영국 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하기 전까지 제1차 베트남 전쟁에서 영국 군 휘하에 일본 군들은 베트 민 게릴라들을 캄보디아 정글 지역까지 완전히 밀어내고 2,700여 명의 게릴라를 사살하였다.(이전 블로그 참조) 일본 군은 밀림 전투에 익숙한 베테랑(veteran)을 중심으로 무장과 훈련이 부족한 베트 민 게릴라들이 정글에 숨어서 매복 공격을 하여도, 그들보다 한 발 앞서 정글의 지형을 이용하여 포위 섬멸 작전을 구사, 남부 베트 민 게릴라들을 전멸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다. 그레이시 영국 군 사령관이 요청한 후속 군수 물자 보급과 인력 보충이 되었다면 베트 민은 전멸되고, 베트남 공산 세력의 북 베트남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 존슨의 요청으로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대한민국은 31만 2천여 명의 한국 군을 베트남에 파병하였다. 지원병을 중심으로 한 맹호, 청룡부대를 선두로, 년 인원 5만 명까지 파월되었다.

맹호 부대 마크
청룡 부대 마크

한국 군의 주요 지휘관과 선임 직업 하사관들 중에는 6.25 참전 군인들이 많았고, 반공 교육을 통한 공산당 섬멸이라는 대의명분은 한국 군의 전투 의식을 고양시키기에 적절하였다. 이런 군기(morale)를 가진 특수 부대(Special Force)들은 베트콩은 물론이고 북 베트남 정규군과의 교전에서 월등한 사상자 교환 비율(1:10.3)을 보여 주었다. 이런 개인 전투력의 우세보다 한국 군의 뛰어난 전과를 거둔 더 중요한 요인은 전투에 임하는 태도였다. 적의 매복 공격을 받으면 한국 군은 대응 사격을 하면서, 양 측면을 포위하여 퇴로를 차단하고, 공군 폭격이나 포병의 지원 사격을 요청하며 적이 땅굴로 대피하면 발견한 땅굴을 중심으로 다른 출입구를 찾아 봉쇄한 후, 최루탄을 질식할 정도로 투입하여 적 게릴라들이 튀어나오게 하여 두더지 잡기 하듯이 섬멸하였다. 이런 악착 같이 적을 잡겠다는 태도가 북 베트남 군이 한국 군과의 교전을 피하는 주요한 이유였다.

 

한국 군의 베트남 전쟁에서 거둔 가장 큰 승리는 짜빈동 전투이다. 

한국 해병대 1개 중대(company)가 북 베트남 군 1개 연대 병력과 맞붙어 물리친 대표적 전투였다.

 

한국 군도 초기 베트콩의 매복과 부비트랩에 많은 인명 손실을 입었지만 밀림 전투에 차츰 익숙해지면서

중대 기지 전술이라는 전술 기지를 구축하여 아군이 맡은 지역을 확실히 장악하는 전술을 구사하였다.

짜빈동은 꽝나이(지도에서 다낭, 훼안, 탐키 다음 도시)에서 북서쪽으로 12 km 떨어진 조그만 마을이다. 이곳에 해병 2 여단 3 대대 11 중대가 중대 기지를 구축하고 있었는데 1967년 2월 14일 오후 11시경 북 베트남 정규 군과 베트콩이 연합한 1개 연대 병력이 급습한다. 

 

짜빈동 전투

293명의 해병 11 중대는 중과 부족이었지만 구축한 중대 기지의 지형을 잘 활용하여 적을 기지 내로 유인한 이후 1 소대와 3 소대의 양측 협공 작전을 펼치면서, 기지 내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육박 전까지 가는 새벽까지의 전투를 치러 적을 퇴각시킨다. 다음날 아군의 보충 병력들이 도착하여 수색을 하니 적 사망자 243명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아군 피해는 15명 전사, 33명 부상이었다. 완전한 대승이었다.

짜빈동 전투 이후 한국 군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면서 미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한국 군이 월남전을 전담한다면 이 전쟁은 조만간 끝낼 수 있을 것이다."는 평가 기사를 실었다. 

만일 매년 10억 달러의 지원을 하면서 한국 군 40만 이상의 병력이(년 간 기준) 파병되었다면 월남전은 어떻게 되었을까? 필자의 생각에 미 해군의 공중 지원과 포병의 화력 지원을 그대로 받았다면 베트콩의 구찌터널 내의 총사령부뿐 아니라, 캄보디아의 호찌민 트레일도 박살이 나고 베트남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영어공부 합시다.

1. veteran

'예비역 사병, 은퇴 군인, 노련가"의 의미이다. 전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이며 한국어에서도 외래어로 통용되는 단어인데 불어식 발음 '베테랑'으로 쓰이는데 영어식 발음에 익숙하면 좋을 듯합니다

2. noose

'올가미"라는 의미이다. 이 단어를 외울 때는 nose(코)의 구멍이 2개 "n oo se"걸기 쉽다. 올가미 이런 연결이 좋을 듯합니다.

3.prowl

"배회, 감시 선회"의 의미이다. 이 단어 암기 시 owl(올빼미)은 큰 두 눈을 가지고 밤에도 관찰한다. "pro-"접두사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가 있으니 합쳐서 감시하며 배회한다는 의미로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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